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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필요조건 논쟁: 논리 탐구공동체의 한 사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12/07/17 13:01:11
조 회  
2626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그리고 조건문’에 관한 논쟁

                                                         이 초식 (고려대 명예교수)

 

<요약문>

이 글은 본래 월튼교수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관계원칙을 비판한 것이며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규정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조건문을 검토한 것이다. 그러나 본래의 글에 대한 비판들이 있어 필자는 이에 대한 응답을 하고 재 비판에 대해 재 응답을 함으로써 이 글은 논리 탐구공동체의 한 가지 사례를 보인 셈이다. 본래의 글을 1장에 그대로 다시 옮기고 2장은 주로 본래 글에 대한 세 분 교수의 논평 골자를 제시하고 이에 대해 필자가 응답하는 형식을 취한다. 3장은 논평을 받고 응답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논의를 좀 더 쉽고 분명하게 하기 위해 고등학교의 <생활과 논리> 수업시간에 있음직한 사례를 작성해 본 것이며 4장은 이에 대한 비판의 골자를 옮기고 5 장은 그 응답을 필자의 결론과 함께 제시하다.

월튼교수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원칙으로 (T2):‘A가 B의 충분조건이면 -A 는 not-B의 필요조건이다’를 제시한바 있다. (T2)원칙은 활용론 범주에 속하는 필요조건 원칙과 구문론 범주의 대우법과의 범주차이를 무시하고 전자를 후자처럼 취급한 데서 비롯된 범주착오(category mistake)의 오류를 범한 것으로 필자는 본다. 특히 -A’와 ‘not-B’와 같은 무한 요소집합을 유한요소집합과 동일시하여 무한판단의 특성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때 그 오류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T2) 원칙에 따르면 필요 없는 것들을 필요조건이라고 해야 하는 불합리한 귀결에 도달함을 보인다.

<주요어> 필요조건, 충분조건, 대우법, 구문론(syntax) 화용론(pragmatics) 범주착오(category mistake), 유한집합, 무한집합, 무한판단, Douglas Walton,

 

1.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그리고 조건문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개념은 일상생활의 추리에서 뿐만 아니라 과학탐구에서도 추론의 유용한 도구로 널리 쓰인다. 이 조건들이 고등학교 수학교육과정 주1 에서 필수로 되어 있는 것은 그 중요성을 대변하는 한 가지 사례라고 하겠다.

소거에 의한 귀납법(induction by elimination)으로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데에는 필요조건의 원인과 충분조건의 원인이 활용된다. 즉, ‘결과 E 가 나타났을 때 없었던 성질은 E의 필요조건이 될 수 없다’는 분석원리(1)와 ‘결과 E 나타나지 않았을 때 있었던 성질은 E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분석원리(2)를 채용하여 인과관계를 탐구하는 방법도 유용한 경우가 많다. 요컨대, C1가 있으면 E1가 필히 있다고 할 때, C1은 E1이기 위한 충분조건이고, C2가 없으면 E2가 필히 없다고 할 때 C2는 E2이기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풀이한 것이다.

분석원리(1)과 (2)에 들어 있는 조건문은 ‘◌ 이면 필히 □ 이다’의 구조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귀납법(induction by enumeration)과는 달리, 소거법은 오히려 연역법의 구조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연역적으로 타당한 추론은 전제가 참이면 결론이 필연적으로 참이 되는 추론이므로, 조건문 ‘◌ 이면 필히 □ 이다’의 구조로 번역가능하기 때문이다.

수학교과서에 의하면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에 관여된 조건문은 ‘◌ 이면 □ 이다’가 참이 되는 경우에 한정한다. 그리하여 ‘◌ 이면 □ 이다’를 ‘◌ → □ ’로 기호화하고 ‘◌ → □ ’가 참인 경우를 ‘◌ ⇒ □ ’로 표현하고, ‘◌ ⇒ □’인 경우 ◌ 은 □ 이기 위한 충분조건이고 □ 는 ◌이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풀이한다. 따라서 ‘◌ ⇒ □ ’는 ‘◌ → □ ’가 거짓이 되는 경우를 배제한 것으로 풀이할 때 ‘◌ → □ ’가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조건문과 일치한다. 주2

그러면 필연양상을 지니지 않는 조건문도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가령, ‘◌ 이면 □ 일 것이다’는 형식의 개연적 조건문에 의해서도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가려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귀납추론을 기반으로 한 조건문에 의해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구분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같다. ‘◌ 이면 대체로 □ 이다’의 형식을 검토해 보자. ‘◌ 은 대체로 □ 이기 위한 충분조건이며 □ 은 대체로◌ 이기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 이면 대체로 □ 이다’의 형식에서는 ‘◌ 이나 □ 가 아닌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 이 □ 기 위한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없고 □가 아니면서도 ◌일 수 있으므로 □가 ◌ 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할 수 없다.

월턴 교수는 그의 저서 <비판적 논쟁의 기초>에서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일반원칙을 제시한다. 주3

(T1) A가 B의 필요조건이면 -A 는 not-B의 충분조건이다.

(T2) A가 B의 충분조건이면 -A 는 not-B의 필요조건이다.

(T3) A가 B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면 B는 A이기 위한 충분조건이다.

(T4) A가 B이기 위한 충분조건이면 B는 A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월턴 교수는 (T1)과 (T2)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에 관한 일반원칙 (T3)과 (T4)의 각기 역이 되는 원리라고 한다. 그런데 필자는 (T2)는 필요조건이 될 수 없다는 반론을 다음에 제시한다.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관계가 조건문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가령, 대학에 입학하려면 시험에 합격해야하는 경우, 시험합격(B)은 대학입학(A)을 위한 필요조건이고 대학입학(A)은 시험합격(B)의 충분조건이다. 다시 말하면 조건 명제 A B가 참인 경우 A는 B이기위한 충분조건이며 B는 A이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T4)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B → -A’는 ‘A B'와 동치이므로

응용원리1: B가 A의 필요조건이면 -B는 -A의 충분조건이다.

응용원리2: A가 B의 충분조건이면 -A는 -B의 필요조건이다.

과연 응용원리 1과 2가 성립하는지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검토해 보자. 그런 경우

‘충분조건’과 ‘필요조건’의 의미가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와 부합되는 지도 알아보자.

<응용원리1>은 예에서 제시되었듯이 시험합격은 대학입학의 필요조건이며 시험불합격이면 대학입학이 불가능하므로 대학 입학 아님의 충분조건일 것 같다. 하지만 <응용원리2>는 좀 아리송하다. 대학 입학한 것이 시험합격의 충분조건일 지라도 ‘대학입학 안 한 것’이 ‘시험 합격 안한 것’의 필요조건이란 말인가? 대학에 입학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험에 합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므로 <응용원리2>는 성립되는 것 같다. 그런데 ‘대학입학 안 한 것’에 포함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그것은 무한히 많다. 그처럼 무한히 많은 것들 모두가 시험에 합격 안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가령 책보는 행위는 ‘대학입학 안 한 것’에 틀림없이 속하지만 그것이 시험 합격 안 하기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가령, 승강기로만 밖으로 나아 갈수 있는 고층건물이 있다고 하자. 외출하려면 승강기를 이용해야 한다. 이 경우 외출은 승강기 탑승의 충분조건이다. 하지만 외출안하는 것이 승강기 탑승안 하는 것의 필요조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승강기 탑승하지 않은 것이라는 행위 집합에 속하는 요소는 무한하다. 방에서 놀거나 독서하거나 식사하는 등 모두가 외출안하는 것을 필요조건으로 한다면 우리들이 사용하는 필요조건의 의미와는 생판 다른 것이 되고 만다. 예컨대, 부엌 냉장고에 얼음 얼리는 행위는 승강기 탑승하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부엌 냉장고에 얼음 얼리기 위한 필요조건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가령, ‘냉장고 에 전원이 들어오도록 한다.’고 하면 이해되나, ‘외출안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비록 외출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더라도 초점 없는 (pointless) 대답이 될 것이다. 주4

요컨대, 우리가 일상생활이나 과학탐구에서 사용하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개념을 규정할 때에 진리함수적인 조건명제의 동치관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필요 ,충분 조건이 ‘A B'에 적용되었다고 해서 그와 동치인 ‘-B → -A’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따라서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규정하는 데 관여하는 조건문은 개연적 조건문도 안 되고 대우 관계의 필연적 조건문도 안 된다면 과연 어떤 조건문 이어야 하는지 탐구해 볼만 하다.

필자는 월튼교수의(T2)에 관한 필자와 같은 비판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고등학교 학생수준에서 탐구심을 자극하고 학자들의 토론에도 접근가능하다는 자부심을 갖게 할 수 있다. 끝으로 이 글은 논리학계의 심의 와 검증을 받기 위한 것임을 부언하고자 한다.

 

2. 세 분의 논평과 그에 대한 응답

김 교수의 논평 주5

(

1) 우선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월튼의 일반원칙이라고 제시된 것이 조건문에 대한 분석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월튼이 하고자 하는 것은 실제적인 맥락에서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어떻게 구분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제안 정도입니다. 이는 그가 이 분석을 ‘대화 맥락에서의 실천적 추론’이라는 장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따라서 저자가 말하는 방식으로 월튼의 분석이 형식적 엄밀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월튼의 뜻이 아니라고 보입니다. 더군다나 그가 이러한 원칙들을 제시하는 것이 조건문에 대한 분석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저자가 월튼의 분석이 조건문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보이려고 한다면 그에 대한 타당한 논점들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논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김 교수 (1)에 대한 응답:

김 교수가 지적 하였드시 월튼교수가 조건문에 대한 분석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니라고 필자도 생각하며 필자 역시 조건문 분석을 목적으로 이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요논제가 되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규정하는 데에 조건문이 반드시 수반되므로 이를 언급한 것입니다. 김교수가 ‘대화 맥락에서의 실천적 추론’의 장이라는 지적도 확실하며 필자도 그런 맥락에서 이글 끝에서 자세히 논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제가 일반원칙으로 제시한 것은 월튼 교수 자신의 표현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T1에서 T4 까지를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진술에 관한 원리들(these principles concerning the relationship between necessary and sufficient condition statements)이라는 표현을 하기 때문입니다.

(2) 저자의 논점이 정확히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습니다. 저자는 두 가지 점을 다루고 있다고 보입니다. 하나는 연역적 조건문과 귀납적 조건문에서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고, 다른 하나는 월튼의 분석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 두 논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귀납적 조건문에서는 필요/충분조건을 논의하는 것이 왜 의미 없는지 저자의 논점을 납득할 수는 있으나 이 점이 왜 다루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월튼의 분석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김 교수 (2)에 대한 응답:

김 교수가 필자의 논점이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면 <월튼의 원리에 대한 비판>으로 논점을 고정시키도록 하겠습니다.

(3) 저자의 월튼에 대한 비판은 정확해 보이지 않습니다. 월튼은 ‘~’와 ‘not-’을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점을 무시합니다. 또한 저자는 대우 규칙을 월튼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 대우 규칙을 이용하여 월튼을 비판합니다. 이런 이유로 저자의 비판이 공정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김 교수 (3)에 대한 응답:

‘필자도 월튼교수가 ‘~’와 ‘not-’을 구별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구별을 하는지 검토해 보았으나 의미의 구별을 하지 안 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래가 그 부분에 관한 설명의 전부입니다.

Using the negation, or 'not' symbol ∽ , meaning that ∽A has opposite truth value of A, that is, if A is true, then ∽A is false, and vice versa.

이 교수의 논평

이 글에서 필자는 ‘A가 B의 충분조건이면 ~A는 ~B의 필요조건이다’는 월턴의 원리는 필요조건의 개념을 무의미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글에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어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 필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런데 ‘대학입학 안 한 것’에 포함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그것은 무한히 많다. 그처럼 무한히 많은 것들 모두가 시험에 합격 안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가령 책보는 행위는 ‘대학입학 안 한 것’에 틀림없이 속하지만 그것이 시험 합격 안 하기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여기서 “책보는 행위는 ‘대학입학 안 한 것’에 틀림없이 속하지만 그것이 시험 합격 안 하기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볼 수 없다”는 필자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대학입학 안 한 것’에 포함될 수 있는 무한히 많은 것들 모두가 시험에 합격 안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화자의 이해가 잘못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주위에 인화물질이 있다’는 것은 화재가 발생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런데 ‘주위에 인화물질이 있다’는 조건을 ‘(주위에) 나무가 있거나 종이가 있거나 기름이 있다’와 같은 선언문장으로 표현해보자. 이 경우 ‘주위에 나무가 있거나 종이가 있거나 기름이 있다’는 것은 화재가 발생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주위에 나무가 있다’는 것은 화재가 발생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다. (나무가 아니라 종이가 있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A∨B)는 C가 성립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로부터 ‘A는 C가 성립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가 추론되지 않는다. (조건문으로 표현하면 ‘C→(A∨B)’로부터 ‘C→A’가 추론되지 않는다.) 이 추론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필자는 (응용원리2)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 교수 논평(1)에 대한 응답

이 교수는 필자의 논문을 정성껏 읽고 예문까지 들어 논평해 주신데 대해 깊이 감사의 말씀을 우선 드립니다. 하지만 ‘대학입학 안 한 것’에 포함될 수 있는 무한히 많은 것들 모두가 시험에 합격 안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화자의 이해가 잘못인 것 같다 ‘ 이 대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아래와 같이 응용원리2에 필자의 예문을 대입해 봅시다.

응용원리2: A(대학에 입학한 행위)가 B(대학입학시험의 합격한 행위)의 충분조건이면

-A(대학에 입학하지 않은 행위)는 -B(대학입학시험의 합격하지 않은 행위)의 필요조건이다.

여기서 “책보는 행위는 ‘대학입학 안 한 것’에 틀림없이 속하지만 그것이 시험 합격 안 하기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볼 수 없다”는 필자의 주장은 옳다.“고 이 교수는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필자의 논박을 정당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응용원리2>: A가 B의 충분조건이면 -A는 -B의 필요조건이다. 여기서 <응용원리2>를 논박하는 논박사례는 ‘A가 B의 충분조건이면서 -A는 -B의 필요조건이 아닌 사례를 하나라도 발견하면 <응용원리2>는 논박됩니다. 말하자면 입증증거는 많아야 한다고 하지만 반증사례는 단 하나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교수의 예문은 적어도 본 논문의 기본논지에서 먼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필자는 ‘C→(A∨B)’로부터 ‘C→A’가 추론된다 한 것도 아닙니다.

(2) 필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승강기 탑승하지 않은 것이라는 행위 집합에 속하는 요소는 무한하다. 방에서 놀거나 독서하거나 식사하는 등 모두가 외출안하는 것을 필요조건으로 한다면 우리들이 사용하는 필요조건의 의미와는 생판 다른 것이 되고 만다. 예컨대, 부엌 냉장고에 얼음 얼리는 행위는 승강기 탑승하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부엌 냉장고에 얼음 얼리기 위한 필요조건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가령, ‘냉장고 에 전원이 들어오도록 한다.’고 하면 이해되나, ‘외출안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비록 외출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더라도 초점 없는 (pointless) 대답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인과의 맥락에서 사용되는 ‘원인으로서의 필요조건’포괄적으로 사용되는 ‘필요조건’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포괄적으로 사용되는 ‘필요조건’은 예컨대 “철수가 한국에 산다는 것은 철수가 서울에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라고 말할 때 사용되는 것이다.)

필요조건’을 ‘원인으로서의 필요조건’으로 이해할 경우에만, 필자의 다음 주장 “부엌 냉장고에 얼음 얼리기 위한 필요조건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가령, ‘냉장고에 전원이 들어오도록 한다.’고 하면 이해되나, ‘외출안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초점 없는 (pointless) 대답이 될 것이다.”가 옳은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필요조건’을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할 경우 ‘(내가) 외출하지 않는 것’은 ‘(내가) 냉장고에 얼음을 얼리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교수 논평(2)에 대한 응답

이 교수는 원인으로서의 필요조건과 포괄적 의미의 필요조건을 구분하고 필자의 주장이 전자의 경우는 타당하나 후자의 경우는 부당하다고 논평 하지만 필자는 이교수의 포괄적 의미의 필요조건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의 비판을 할 수 없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에게나 일반인들에게 <응용원리2>와 같은 것을 제시하며 가르칠 때 포괄적 의의 필요조건을 어떻게 가르치고 더욱이 그것이 <응용원리2>가 정당함을 입증하고 필자의 반론을 재반박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3) 필자는 2쪽 중간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수학교과서에 의하면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에 관여된 조건문은 ‘◌ 이면 □ 이다’가 참이 되는 경우에 한정한다. 그리하여 ‘◌ 이면 □ 이다’를 ‘◌ → □ ’로 기호화하고 ‘◌ → □ ’가 참인 경우를 ‘◌ ⇒ □ ’로 표현하고, ‘◌ ⇒ □’인 경우 ◌ 은 □ 이기 위한 충분조건이고 □ 는 ◌이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풀이한다. 따라서 ‘◌ ⇒ □ ’는 ‘◌ → □ ’가 거짓이 되는 경우를 배제한 것으로 풀이할 때 ‘◌ → □ ’가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조건문과 일치한다.” 그러나 ‘◌ → □ ’가 참인 경우를 ‘◌ ⇒ □ ’로 표현한다면, ‘◌ ⇒ □’는 ‘◌ → □ ’가 필연적으로 참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 → □’가 참”이라는 것과 “‘◌ → □’가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 교수 논평(3)에 대한 응답

이 논평은 필자의 논지와는 무관합니다. 더욱이 필자는 “‘◌ → □’가 참”이라는 것과 “‘◌ → □’가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것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 ⇒ □ ’는 ‘◌ → □ ’가 거짓이 되는 경우를 배제한 것으로 풀이할 때 ‘◌ → □ ’가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조건문과 일치한다고 했으나. 이교수의 논평은 ‘◌ ⇒ □ ’를 필자의 풀이와 달리 ‘◌ → □’가 거짓이 되는 경우가 있음을 밝힌 것이기 때문이며 양상논리적인 표현을 한다면 이 교수는 p와 Np가 구별됨을 말한 것이고 필자는 Np = -P-p 를 지적한 것이다.

(4) “대학에 입학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험에 합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므로 <응용원리2>는 성립되는 것 같다.”는 필자가 실수로 잘못 적은 것 같다. ‘대학입학 안 한 것’이 ‘시험 합격 안 한 것’의 필요조건이므로, “시험에 합격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학에 입학하지 않는 것이 필요조건이므로...”로 적는 것이 올바르다.

이 교수 논평(4)에 대한 응답

좋은 지적입니다. 필자의 논지가 전체적으로 이해된 것으로 만족합니다.

박 교수의 논평

(1) 필요조건(충분조건) 분석에 관한 이 짧은 논문에서 논자가 핵심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과 관련되어 구조적으로 짜임새 있는 논증이 이루어졌는지, 또한 논점에 대한 명료하고 충분한 논증이 이루어졌는지 의심스럽다. 논문은 충분조건과 필요조건의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해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를 언급하면서 시작하고 있으며, 논문 마지막 부분에서도 다시 고등학교 교과서 언급이 나오고 있는데, 이미 짧은 내용의 논문에서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내용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박 교수 논평(1) 에 대한 응답

이 짦은 글을 쓰게 된 것은 고등학교 현장에서도 논리학의 세계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음을 밝히고 논의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2) 논자의 논의에서 논자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일반원칙 (T2)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인데, 논자는 “(T2)는 필요조건이 될 수 없다”라고 잘못 쓰고 있다.

박 교수 논평(2) 에 대한 응답

바른 지적입니다. “ (T2)는 필요조건이 될 수 없다는 반론을 다음에 제시한다.” 를 간략하게 “(T2)는 성립할 수 없다는 반론을 다음에 제시한다.”로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3) 논자의 문제의식은 생각해볼 문제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좀 더 설득력 있는 논증이 다수 추가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논점을 뒷받침하려고 든 두 사례에서도 단순히 일상어 사례를 떠나 명료한 세팅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교수 논평(3) 에 대한 응답

동감이다. 필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데 에는 필자의 책임이 큰 것으로 여겨져 필자는 좀 더 명확한 사례를 고등학교 <생활과 논리> 수업의 현장을 무대로 등장 시켜 다음과 같은 사례를 구상해 보았다. 주7

 

III ‘논박사례 찾기’ 수업 사례

고등학교 논리시간에 <논박사례 찾기> 수업이 끝날 무렵 한 학생의 질문이다.

선생님 ! 논박사례 찾는 것도 발견이라고 하셨지요. 개별적인 주장의 논박사례 발견도 창의성을 높여주지만, 원리, 원칙으로 여겨온 것의 논박사례를 발견하는 것은 더 큰 발견이라고 하셨지요.

그래, 너 그런 큰 발견을 하였니.

네, 지난번 논리 수업 때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원칙을 배웠는데

그 중의 하나 <T2 원칙>이, 문제인 것 같아요.

(T1) A가 B의 필요조건이면 -A 는 not-B의 충분조건이다.

(T2) A가 B의 충분조건이면 -A 는 not-B의 필요조건이다.

(T3) A가 B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면 B는 A이기 위한 충분조건이다.

(T4) A가 B이기 위한 충분조건이면 B는 A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어째서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이야기 해볼래.

<T2 원칙>에 따라 대답하면 엉터리 같은 대답을 하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엉터리 대답이라고? 좀 자세히 말해 보렴.

어느 절해고도에서 TV를 시청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 시청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기부터 들어와야 하니 전기가 있어야 한다.

* TV 수상기가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 TV 안테나 설치 등을 필요조건이라고 말하면 맞는다고 하겠는데

<T2 원칙>에 충실히 따라 말하면 ‘목포에 안 간다.’ 도 필요조건이라고 대답할 수 있으니 말이기 때문입니다.

절해고도에서 TV를 시청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목포에 안 가는 것이라니 말이 됩니까?

이런 것이 어불성설 (語不成說), 맞지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나는 잘 이해가 안 되는데..

그 섬이 목포 앞바다에 있다고 하고 목포에 가려면 꼭 배를 타야한다고 해요. 그러면

<그 섬사람이 목포에 가려면 선편을 이용한다.> 가 성립되어

목포에 갔다면 선편을 이용한 것이 확실하므로 목포에 간 행위는 선편을 이용한 행위의 충분조건이고 선편이용의 행위는 목포에 가기 위한 필요조건임에 틀림없지요.

그러니 (T2)따라 보면, A(목포에 간 행위)가 B(선편을 이용한 행위)의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A (목포에 가지 않은 행위)가 not-B(선편을 이용하지 않은 행위)의 필요조건이다. 이것은 될 수 없지요.

not-B(선편을 이용하지 않은 행위)는 무한히 많을 것인데 그 중의 하나가 <그 섬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행위>이라고 도 하겠지요.

그러니 그 섬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목포에 가지 않는 것이라는 대답이 T2 원칙에 따른 엉터리 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T2 원칙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IV 최 교수의 논평

만약 선생님이 이 수업을 담당하셨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

간략하게라도 말씀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이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최교수의 의견이 제시되다.

우선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문장을 쓰고 생각해보지요.

A: X 섬에 사는 철이가 목포에 간다.

B: X 섬에 사는 철이가 배를 탄다

C: X 섬에 사는 철이가 X 섬에서 TV를 시청한다.

선생님께서 설명하신 설정에서 A는 B이기 위한 충분조건입니다. 그러니까 원칙 (T2)에 의해서 ~A는 ~B의 필요조건입니다. 즉 “X섬에 사는 철이가 목포가 가지 않음”은 “철이가 배를 타지 않음”의 필요조건입니다. 그런데 “철이가 배를 타지 않음”에는 C가 포함되고 따라서 ~A가 C의 필요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의문은 “왜 ~A가 C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 이상한가?”라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철이가 목포가 가지 않음”은 당연히 “그가 X 섬에서 TV를 시청하기”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철이가 목포에 간다면 철이가 그 섬에서 TV를 시청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선생님께서 제시한 설정에서 사용된 문장에 주어를 포함시켜서 명료한 문장으로 구성하면 반례가 되지 않아 보입니다.

 

V 결언과 최 교수의 논평에 대한 응답

바쁘신데 위에서처럼 예문을 자세히 만들어 분명하게 답변을 보내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리고 괴롭히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논평과 응답이 진리 탐구의 공동체의 한 가지 사례로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논평에 대한 응답을 하기 이전의 필자의 결론부터 제시하고 그 결론을 보충 설명하는 자료로서 선생님의 논평에 응답하고자 합니다.

월튼교수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원칙으로 (T2), 즉, ‘A가 B의 충분조건이면 -A 는 not-B의 필요조건이다.’를 제시한바 있다. 필자의 비판과 결론의 골자는 대우법 원칙과 필요조건법 원칙은 그들이 속해 있는 범주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2)에서는 이들 범주들이 동일 한 것으로 착각하고 대우법 원칙에 필요조건법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함으로 범하게 된 이른바 범주착오(category mistake) 주8 의 오류라고 봅니다. 그리하여 (T2) 원칙에 따르면 필요 없는 것들을 필요조건이라고 해야 하는 불합리한 귀결에 이른다는 것을 보이고자 합니다. 우선 다음의 대우법 원칙과 연관된 것을 생각해 봅시다.

(1) ∀× (P× → Q×)

(2) ∀× (∼Q× → ∼P× )

(3) { x∣x ∈−Q → x ∈−P }

(1)과 (2)가 동치가 된다는 대우법이나 (2)는 집합으로 표현하면 (3)이 된다는 등의 원칙들은 그 기호들의 관계를 통해 참이 입증 되므로 순수 구문론 (pure syntax)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필요조건법은 필요한 조건을 규정하는 규칙이므로 ‘누구가 어떤 사항에서 무엇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것이 용어 자체에서 암암리에 전제되기 때문에 대우법처럼 순수 구문론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1) ∀× (P× → Q×)이 (2) ∀× (∼Q× → ∼P× )와 동치임을 논할 때 누구가 어떤 사항에서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필요조건법에서는 필요의 주체나 필요한 사항과 행위 등 최소 3항 관계가 전제되므로 필요조건법은 순수 활용론 (pure pragmatics) 범주 주9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구체적인 인물이나 상황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고 “누구든지, 어떤 상항에서든지 무엇을 하든지”라는 보편성을 전제하는 것이 필요조건법이므로 논리교육이나 설명을 할 때에는 임의 예문을 들어 최 선생님처럼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A: X 섬에 사는 철이가 목포에 간다.

B: X 섬에 사는 철이가 배를 탄다.

C: X 섬에 사는 철이가 X 섬에서 TV를 시청한다.“

위와 같이 최선생님이 <철이>라는 사람을 설정한 것은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고교생의 질문형식으로 좀 더 간략하게 표현하였으나 구체적인 사람을 넣어 최 선생님 같이 검토해주시니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물론,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의 개념은 인과개념에도 적용할 수 있겠으나, 일상적인 경우는 교재 주10 에서 언급하듯이 인간의 목적 실현의 행위와 연결된 것으로 논의하am로 논의의 한계도 그렇게 제한하여 검토합시다.

“선생님께서 설명하신 설정에서 A는 B이기 위한 충분조건입니다. 그러니까 원칙 (T2)에 의해서 ~A는 ~B의 필요조건입니다. 즉 “X섬에 사는 철이가 목포가 가지 않음”은 “철이가 배를 타지 않음”의 필요조건입니다. 그런데

“철이가 배를 타지 않음”에는 C가 포함되고“ 여기서 필자는 선생님이 “철이가 배를 타지 않음”에는 C가 포함됨을 인정하신 것에 주목하여 선생님의 C:: X 섬에 사는 철이가 X 섬에서 TV를 시청한다. 의 'C'를 'C1'으로 표기하고자 합니다 . “철이가 배를 타지 않음”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될 수 있을까요? C1, C2, ...Cn...실제로 셀 수 없다는 의미의 무한이라고 하겠고 C1을 좀 더 세분할 수 있을 것인데 다음의 C11과 C12만을 검토해 봅시다.

C1:X 섬에 사는 철이가 X 섬에서 TV를 시청한다.

C11:X 섬에 사는 철이가 목포에 가느냐 안 가느냐의 문제가 X 섬에서 TV를 시청하는 것과 직결되어있기 때문에 알 필요가 있는 경우, X 섬에 사는 철이가 X 섬에서 TV를 시청한다.

C12: X 섬에 사는 철이가 목포에 가느냐 안 가느냐의 문제가 X 섬에서 TV를 시청하는 것과 아무런 관계도 없기 때문에 알 필요가 없는 경우, X 섬에 사는 철이가 X 섬에서 TV를 시청한다.

이렇게 설정해 놓고 보면 “철이가 배를 타지 않음”에는 C1 뿐아니라 C11, C12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C11의 경우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당연히 “그가 X 섬에서 TV를 시청하기”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하지만 C12의 경우도 필요조건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개념은 무시간적이고 탈 인간적인 용어가 아니라 목적지향적인 인간행위의 논의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형식논리의 대우관계의 형식 그대로(응용의 경우제외)는 무시공적이고 탈 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은 그런 개념이 아닌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T2>의 원리는 범주착오의 오류 (category mistake)로 표현될 것 같습니다. 다시금 반복하여 필자의 결론을 간추리고자 합니다.

 

결 언

월턴교수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원칙으로 (T2), 즉, ‘A가 B의 충분조건이면 -A 는 not-B의 필요조건이다.’를 제시한바 있다. 필자의 비판과 결론의 골자는 대우법 원칙(순수 구문론 범주)과 필요조건법 원칙(순수 활용론 범주)은 그들이 속해 있는 범주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2)에서는 이들 범주들이 동일 한 것으로 착각하고 대우법 원칙에 필요조건법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범주착오(category mistake)의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또한 (T2) 원칙의 후건인 “-A 는 not-B의 필요조건이다” 는 무한요소 집합, -A가 무한요소집합 not-B의 필요조건이라는 진술이므로 이것은 무한 개념을 유한 개념과 같은 범주로 취급하는데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도 동시에 지적할 수 있다. 이리하여 (T2) 원칙에 따르면 C12의 경우에서처럼 X 섬에 사는 철이가 목포에 가느냐 안 가느냐의 문제가 X 섬에서 TV를 시청하는 것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알 필요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X 섬에 사는 철이가 X 섬에서 TV를 시청한다’의 필요조건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X섬에 사는 철이가 목포가 가지 않음이라고 하게 되며, 이를 좀 더 확장해보면, X섬에 사는 철이가 광주,(대전, 서울, ... 등지)에 가지 않음 등이 그 필요조건이라고 대답 하게 된다. 이것은 필요 없는 것들을 필요조건이라고 하니 초점을 잃은 불합리한 대답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무한 개념을 유한 개념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자연수의 예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가령, 1에서 100까지의 유한 자연수의 경우 그 안의 짝수의 수는 50개 이므로 100개의 절반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셈법은 유한수의 경우 일반화하여 적용가능하다. 그러나 그 셈법을 무한수의경우에도 유한수와 차이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대로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자연수는 무한하다. 그리고 짝수의 수도 무한하다. 자연수는 짝수의 두 배이니 자연수 무한은 짝수의 무한보다 두 배라고 해야 하나? 자연수와 짝수 모두 무한 수인데, 어느 무한수가 어느 무한수의 두 배라니 이상하지 않는가? 이처럼 월튼 교수는 (T2)에서 무한 요소집합과 유한 요소 집합의 차이를 무시하고 필요조건의 개념을 적용하는 잘 못을 범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끝으로 필자의 글을 논평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이 글이 논리 탐구 공동체의 긴요한 사례가 되기를 바라는 바다.

 

각 주

주1 제7차 교육과정, 교육부 고시 제 1997-15호, 고등학교 교육과정 (I),pp 274-275

주2 <‘◌ → □ ’가 참인 경우를 ‘◌ ⇒ □ ’로 > 이라는 수학교과서의 서술이 정확하지 못하여 필자는 <‘◌ ⇒ □ ’는 ‘◌ → □ ’가 거짓이 되는 경우를 배제한 것으로 풀이할 때 > 로 첨부한 것이다. 이점은 뒤의 논평에서 이교수도 지적하고 있다.

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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