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테네의 철학

아테네 시대로 접어들면 철학적 토론의 주제가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문제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을 자연철학(自然哲學)의 시대라 하는데 반해 아테네의 철학을 인성론(人性論) 시대로 호칭하기도 한다. 토론의 주제가 바뀌었다고 해서 전통적 철학토론과 단절된 것은 아니다. 토론의 방식은 계승 발전되어 점차 체계화되기 때문이다.

자연철학시대에서도 인간이 완전히 배제된 것이 아니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자연 문제해결에서 인간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특히 제논의 배리법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으로 계승 발전되고 소피스트들의 인간 척도 논의에서도 활용된다. 피타고라스학파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은 플라톤철학은 철학적 토론의 내용의 측면에서도 불변적이고 영원한 이데아의 세계를 상정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체계도 자연철학자들의 논의방식이 형식논리학으로 체계화된다.

철학적 토론에서 기준의 문제

우리의 진주 담소회에서는 '기준 (criterion)'의 개념이 여러 가지로 논의 되었다. 립맨 교수가 철학교육에서 기준 문제를 중요시한 것이 희랍철학과 의 연계여부가 논의 되다.

⨀ 립맨 교수는 기준을 논의하는 철학교육을 통해 교육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하나 그렇지 않다. 정담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들을 하지만 정답은 없다. 우리현실의 난제들을 보아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진솔하게 논의를 해보아야 한다.

❑ 난제 타개에 있어서 마치 자신의 주장만이 정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토론을 방해할 수 있겠지요. 그렇긴 하나 글자 그대로 ‘정답이 없다’고 단정한다면 철학적 토론은 필요없을 것이다. 시간낭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답을 당장 찾기는 어려우나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토론을 할 만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상기설은 그런 희망을 말한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기 때문에, 과거에 알고 있던 이성을 밝혀만 주면 난제 타결의 희망은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정답은 없다는 회의론을 취하는 소피스트들은 그런 희망은 없기 때문에 말만 잘해 상대방을 이기어 이득을 얻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다.

✪ 그런데 다문화가정을 비롯해 다문화사회에서는 하나의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만을 강행할 수는 없지요. 다원적인 기준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며 공존해야 하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공통된 기준도 없다는 회의론은 곤란할 것입니다. 포스트 모던이즘은 그런 다원주의를 기반으로 해서 다원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우리와 다른 문화, 관습을 무조건 배격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도록 사고의 폭을 넓히게 해야 하겠지요. 이리하여 다원성을 인정하고 서로가 진리탐구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철학적 토론을 익혀야 할 것입니다.

❑ 실상 철학교육에서 강조되는 민주적인 철학적 토론이 바로 그런 것 같습니다. 다원화 사회의 다양한 욕구를 조화롭게 해결하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서로 다른 문화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다름을 서로 인정하면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도가 필요하지요. 서로가 다르기만 하고 공통되는 점을 찾지 못하면 공동생활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공동의 합일점, 다 함께 복종해야할 기준을 찾지 못하면 다문화사회는 붕괴될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동으로 승복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서는 도저히 함께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기준이 무엇일가요? 우선 국법이나 각종 사회규범들이 공통의 기준이라 하겠지요.

블랙박스 이야기

❑ 우리 이야기 중에 나왔던 블랙박스를 생각해 봅시다. 자동차 충돌의 교통사고가 발생 했는데 상대방이 나의 잘 못이라 하면서 증인도 있다고 합니다. 나는 묵묵히 있다 경찰에게 나의 블랙박스를 검토하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잘 못이 상대방에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보면 증인의 기준보다 블랙박스가 더 신빙성 있는 기준, 함께 복종해야 할 기준이 된 셈이네요. 이 처럼 다 같이 복종할 수 있는 기준이 다원화 사회일수록 더욱 요구될 것입니다.

그런데 고대 희랍철학자들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기준 못지않게 인간이 만들 수 없고 주어진 기준에 더욱 큰 관심을 보인 것 같습니다. 철학적 토론의 주제가 되어온 자연법칙이나 논리법칙은 우리가 활용할 수 는 있어도 우리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가령, 우리의 삶의 기반이 되는 헌법도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으나 헌법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이성의 법, 즉, 자연법 자체를 우리가 바꿀 순 없다는 것이겠네요.

밀레투스학파가 추구한 자연의 기본원리나 자연과학적 탐구의 대상은 인간의 법률처럼 인간이 바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그런 것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피타고라스학파나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수학을 존중한 것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자연수의 체계의 표현방식은 지역마다 다를 수 있으나 그 체계 자체는 인간에 의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이처럼 불변의 기준이 희랍자연 철학의 주제였으며 인간문제에서도 가능한 한 그런 종류의 기준을 탐구하려는 것이 인성론 시대에도 목표가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문화 사회에서 이질성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하겠으나 그에 못지않게 공통의 삶을 조화 있게 할 수 있는 공통기준의 폭을 넓히고 그에 복종하는 인성을 육성하기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런 인성 교육이 철학교육의 목표겠지요. 그래서 립맨 교수도 철학교육에서 기준 문제를 강조한 것 같습니다. 공동을 토의에 의해 모두가 따라야 할 기준으로서

첫 번째로 꼽은 것이 논리적 사고지요. 물론, 논리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논리가 무시되고 논리에 불복종하면 어떤 토론도 의미있게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正義의 기준 문제

인성론 시대에는 무엇보다도 인간행위가 따라야 할 기준으로서 도덕문제가 주제입니다. 그런데 진주 담소회에서는 “학부모들이 도덕교육을 하지 말아 달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자기 자녀들이 도덕교육을 받아 착하게 살면 손해만 보고 양보하다보면 무기력해 진다는 것일 가요. 하여간 도덕교육이 학부모들에게 그렇게 각인되었다면 분명히 큰 문제입니다.

인간을 주제로 하는 아테네 철학에서 크게 부각되는 것은 인간의 윤리와 국가문제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에 의하면 사람들이 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바른 행동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진정으로 바른 행동을 알 면 행하게 마련이라는 知行合一說에 근거하여 知德一致說 에 이른다. 우리는 덕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바른 행동이 일시적으로 손해를 가져오는 것 같지만 결국 큰 틀에서 보면 이득이 됨을 안다 (德 = 得)’는 의미로 아는 것이라면 스스로 불행을 자초할 자가 없을 것이므로 知行合一說과 知德一致說은 이해될 것 같다.

러셀에 의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이란 자기애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연장하는 것이라고 보았다”고 하며 “당신이 당신 자신을 사랑하듯이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건, 당신 자신의 이익 때문이라는 것이다”이에 대해 러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다소 독선적이고 자기 중심적인성격 때문에 상처입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도덕교육을 하지 말아달라는 학부모들에게는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가 적중할 것 같다. 우리가 선행을 하는 것은 결국 우리자신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생물들이 자기보존을 본능적 활동으로 삼는 생물을 연구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자기 사랑을 도덕생활의 기초로 삼은 것은 괄목할 만하다.

플라톤의 경우 덕은 사회 윤리에 속한다. 생산계급의 節制의 덕, 방위계급의 勇氣의 덕, 지배계급의 智慧의 덕과 이들 모두가 추구하고는 최고의 사회도덕은 正義의 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맥락을 달리 하기는 하지만 정의문제가 중요함을 갈파하고 이를 분배적 정의 (Distributive justice)와 교정적 정의(Rectifiable justice)로 구분한 구분방식은 오늘날도 널리 통용되고 있다. 교재에서 다음 분배적 정의에 관한 것을 검토해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론에서 분배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는데, 플라톤의 <<국가>>에서 소크라테스가 정의에 대해 정의할 때도 이 분배의 원리에 의거하고 있다. 이런 正義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제각기 공정한 몫을 받을 때 정의가 이루어진다. 이런 정의론에 항상 따르는 난점은 이 견해가 무엇이 공정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이 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적어도 소크라테스는 상당히 객관적인 것으로 보이는

기준을 주장했었는데, 그건 교육의 정도라는 기준이었다. 이 기준은 중세 시대에는 내내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대단히 유효하게 쓰이고 있다. 정의론이 현실에 실제로 적용될 수 있으려면, 어떻게든 무엇이 공정인가를 결정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 In his theory of justice, Aristotle adopts the distributive principle, which operates in Socrates' definition in the 'Republic'. Justice is done if everyone receives his fair portion. The inherent difficulty in such a view is that it does not provide a basis for deciding what is fair. What are to be the criteria? Socrates at least insists on one criterion which seems reasonably objective, to wit the measure of education. This is a view which is largely in force with us today, though during the Middle Ages it was not. The question of deciding what is fair must evidently be resolved somehow if the theory of justice is to be applied.)

1-1. '모든 사람이 제각기 공정한 몫을 받을 때 정의가 이루어진다.'

1-2. ‘동등한 사람들은 동등한 권력을 가져야 하지만 동동하지 않은 사람들이 동등한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

러셀은 <1-1>이 무엇이 공정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지 못하는 난점을 지닌다고 비판하였다. 과연 그렇다. 하지만 <1-1>은 무용지물인가? <1-1>에서의 공정한 몫을 동등한 권리나 권력으로 바꾸어 <1-2>로 해도 기준은 못되는 가? 공정한 몫의 내용이나 동등의 실질적 내용적 규정은 없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正義를 담을 그릇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정의의 형식적 구조적 규정 역할을 분명히 할 것 같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교육의 정도를 분배적 정의의 내용을 말 한다면 그것은 “능력에 따른 분배”기준에 해당할 것 같다. 분배 내용기준으로 서는 “업적에 의한 분배”, “필요에 따른 분배”, “노력에 의한 분배” 등이 논의되어 왔다. 그리고 그 어떤 기준에 의해서도 분배 내용을 판가름하기 어려운 경우는 자유시장의 분배 방식을 따르기로 하는 자유주의가 평등주의와 대치되기도 한다. 즉, 어떤 상품을 생산한 자에게 어느 정도를 분배하는 것이 공정하느냐의 문제는 그 상품을 만드는 데 소요된 노력, 그 상품의 필요정도 등을 낱낱이 따지기 어렵기 때문에 시장원리에 맡기자는 주장이 자유사상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 사회에서 많은 갈등의 대상이 되므로 토론해 볼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