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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기와 무본(務本)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09/10/30 17:05:19
조 회  
2974


철학하기와 무본(務本)


  “군자는 근본을 세우고자 애쓴다. 근본이 서면 나갈 길이 생긴다. 효제는 바로 인을 이룩하는 근본 이니라”(‘君子務本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張基槿 역, <論語>, 明文堂 1970)


  나는 한자 실력이 모자라서 순전히 번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학의 동양철학관계 강좌에서 배운 한자실력이 고작이다. 최근에 우리 조상님들의 삶을 이해해야할 필요는 절실한데 한문이 이를 크게 가로막고 있다. 한문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것이 후회된다.


  고려 충선왕 때 조상 한분이 안유님의 문인으로서 300군(郡)에 공자묘 (孔子廟)를 창건하고 가복 (家僕) 600명을 파송하여 봉묘(奉廟)하도록 했으며 경사자집(經史子集)들을 사비(私費)로 발간 해 분포한 유교 초창기 공로자라는 글을 강도지(江都誌)에서 보았다. 자세히 알고 싶으나 한문의 장벽에 막혀 나에게는 암호 문자일 뿐이다. 학창시절 읽었던 먼지 묻은 책들을 다시 들쳐보기도 하고 방송통신 대학의 한문강좌를 청강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위의 글이 내 마음을 멈추게 했다.


  철학 강의를 해오면서 명사의 ‘철학’보다 동명사 ‘철학하기’를 강조해온 나로서는 그것을 무본(務本)으로 풀이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철학한다는 것은 결국 근본을 찾아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것 아닌가? 그처럼 근본을 확립하고 보면 그것을 실현해 나아갈 방도가 생긴다는 글도 설득력이 있다. 역으로 근본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도만을 논의하는 것은 산만하고 맹목적이기 쉽다. 물론 무엇을 근본으로 삼느냐의 문제는 철학해온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여러 학파가 철학사에 출현하지만 각기 그들 나름의 근본적인 것을 찾아 실현하려고 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국철학교육아카데미의 교사교육에서 무본의 철학사상을 활용해보고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 대목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번역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효제는 바로 인을 이룩하는 근본이니라.”(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역자에 따라 약간 달리 번역하기는 해도 대동소이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전후 맥락으로 보아 나는 효제가 인을 이룩하는 본(本)이 아니라 도(道)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본과 도를 위의 맥락에서 대비해 보면 인(仁)이 본(本), 효제가 도(道)에 해당해야 논리적으로 적절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孝弟也者, 其爲仁之道與’가 혹시 잘못 전해 내려온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다. ‘本’을 유지하려면 ‘道의 本’으로 해야 할 것 같다. 혹자는 여기서 ‘도가 행동의 준칙이 되는 정신으로 인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 한다.’ 하지만 효제도 행동의 준칙이므로 인과 효제 중의 어느 것이 상위 개념이며 근본이냐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효제뿐 아니라 애국 애족 등도 모두 인을 실현하는 길로 본다면 인이 본이고 효제가 도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하여간 내가 이런 만용을 부린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아마 한문이 어설픈 탓이기 쉽다. 나의 잘못을 시정해 주실 분들을 이 글을 통해 찾고 싶다.


 

글쓴이 / 이초식

·고려대 명예교수

·전 한국철학회 회장

·수안이씨 대종회 회장

※ 글 내용은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 성숙의 불씨 2009년 8월 27일자 기고문. 발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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