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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인도에서 '자유로'의 의미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08/02/10 16:04:24
조 회  
5597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

‘성숙의 불씨’ 용 초안  (35호 2008/02/05)




                 인도에서 ‘자유로’의 의미


   한국 철학회는 금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세계철학자대회와 연결하여 학회지의 특집주제를 “문명간의 철학적 대화”로 정했다는 소식을 이메일로 전하면서 UN은 21세기를 '문명 간 대화의 시대'로 규정했다는 해설을 첨부하였다.


  필자는 때마침 인도에 체류 중이라 인도와 우리의 문화간 철학적 대화도 해볼 필요를 느끼고 있던 차다. 인도를 여행해본 사람들은 비행장에서 내려 거리로 나오자 교통문화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우선 각종 차량의 경적소리가 “뛰, 뛰”, “빵, 빵” 요란하게 울리며 사방에서 끼어들며 각종 묘기를 연출하므로 사고 날 것 같아 아슬아슬하고 난장판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며칠 지나면서 보니 완전히 난장판이 아니라 나름대로 특유의 질서가 있는 것 같다.

  대체로 스키를 타는 사람들처럼 뒤는 보지 않고 앞만 보는 것 같다. 백밀러를 접고 다니거나 애초에 없기도 하다. 뒤에서 먼저 가겠다고 경적을 울리거나 중앙선 침범하여 추월하는 경우도 속도조절이나 양보가 무척 잘된다. 인도의 고속도로에는 우리처럼 특정한 차만이 다니는 것이 아니다. 자전거, 오토바이, 오토 릭샤가 다니는가 하면 소달구지와 트럭터도 함께 달리고 심지어는 걸어 다니는 사람과 소나 염소들도 함께 이용하고 있다. 고속도로는 특권 차량만의 독점공간이 아니라 이처럼 모두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개방되어 있는 <자유로>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우리와 인도의 교통문화의 차이로 발생하는 고정관념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자유로>는 자유롭게 남북을 왕래하기를 희망하는 고속도로이며 외국의 <자유로(Free Way)>는 통행료를 내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는 고속도로이나 인도의 고속도로는 모든 교통수단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유로>로 호칭하고 싶다.

 

    자유와 평등 개념의 적용도 백지상태에서 논의할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삶의 여건과 연관하여 하여야 한다면 인도의 여건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인도는 현재 고대와 중세, 근대와 현대의 모든 교통수단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우리는 과거를 버리고 살고 있다면 인도는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역사 동시성의 사회다. 우리나라 40년대 맨발 생활, 해방전후 화물자동차에 요행히 타고서 기뻐하던 모습, 625 사변 때 음막 거죽 집에서 누리던 자유, ‘피  흘려 찾은 땅, 땀 흘려 건설하자!’는 구호의 국토 건설 현장의 요란한 소리 등 필자는 현재 이곳에서 내가 살아온 70여년의 기억을 동시적으로  하나씩  점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도의 교통문화는 그 여건에서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인도의 교통문화에도 많은 난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리처럼 서구의 교통문화를 표준으로 삼고서 인도의 교통현실은 ‘난장판’이라는 속단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경적소리만 해도 우리의 경우는 가능한 한 울리지 않는 것이 예의이나 인도의 화물차들은 대체로 경적을 울려달라고 뒷면에 써놓았다. 필자가 인도 교통문화에 이처럼 우호적인 것은 차를 타고 가는 곳 마다 자주 발견되는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들과 LG나 삼성 등의 제품 광고들 때문에 생긴 어떤 편향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런지 모른다.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하여 공평성문제는 자주 일어난다. 우리의 경우도 지역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사례가 많다. 뉴욕도시설계에서 고속도로 건설이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불평등성 논쟁은 과학기술의 윤리문제 교재가 되고 있다. 하여간 우리는 서로 다른 교통문화의 벽을 넘어 상호이해가 필요한 것만은 틀림없다.


                              인도 아우랑가바드에서   이 초 식.

                                 

                                   고려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전 한국철학회 회장

                                   한국철학교육 아카데미 원장    

                             

    



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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