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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문제평가와 수정1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07/08/24 20:08:44
조 회  
4548


 

문제 평가와 문제풀이수정


2007년도  본 아카데미 교사연수 수료자 여러분 !


안녕 하십니까 ?

이 초식 입니다. 마지막 날 (8월 18일) 마지막 시간 나의 문제평가와 문제풀이가 잘 못되어 수정하고자 하오니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수정작업의 과정을 그 문제출제자를 포함하여 우리들의 탐구공동체로 삼고 한국철학교육 아카데미가 제시한 난제타개형 교수학습모형( PAS: Program for Aporia Solving)의 적용사례로서 기술하고자 합니다.


I. 난제의 수준

    문제 출제자가 직면했던 상황은 분명히 난제로 생각되며 여러 가지를 비판 구성하여 그 문제를 출제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2007년 8월 18일, 한국철학교육 아카데미 교사연수 (배려적 사고와 논술)에서 임 동욱 교장선생님이 제시하므로 우리의 난제로 삼았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과 나는 이를 풀기위해 여러 가지 궁리를 하였습니다.

II. 비판의 수준

    일반적으로 비판의 출발은 기존의 문제풀이지요. 임동욱 교장선생님이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개발된 문제풀이와 연결하여 설명했습니다.

    - 첫 인상의 문제평가 -

    나는 이 문제가 통합형 논술문제로서 아주 좋다는 인상을 받았다. 왜냐하면 1) 현대 사회의 바탕이 되는 사회윤리 사상, 공리주의, 다수결 원칙, 정의이론의 기본개념의 이해를 검사할 수 있어 윤리과와 사회과 문제인 반면에, 2) 일상생활 문제에서 함수관계를 구성하는 수학과능력을 알아볼 수 있으며 3) 그와 같은 과목 통합적인 사고를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검토할 수도 있다.  뿐 아니라 4 그 적용에서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전제되고 있는 기본 가정들을 수험자가 인지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기존의 문제풀이 -

그런데 그 풀이에 의하면 [가] 공리주의와 [나]다수결 원칙의 적용 결과가 모두가 학교를 A마을에 설립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 비판 1> 앞에 제시된 나의 첫 인상의 문제평가로 미루어 보건대 기존의 문제 풀이가 정답이라면 결코 그것은 훌륭한 출제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다시 말하면 [가] 공리주의와 [나]다수결 원칙의 적용 결과가 모두가 학교를 A마을에 설립하는 것이 정답으로 나오는 출제라면 결코 탁월한 출제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해답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비판 1의 논리적 구조>      p (좋은 출제)라면 - q (그것이 정답이 아니다)

                               p (첫인상)

                           ---------------------------

                            그러므로 - q



III. 구성의 수준

 

  <구성 1>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공리주의와 다수결원칙의 결과가 다른 것으로 구성했다.


                  A 마을               중간지점 C                    B 마을

               200명       1.5km                  1.5km              100명      


나의 구성을 수치로 표현하기 위해 중간지점1.5km C를 택하였다.

그리고 공리주의 원칙으로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은 <최대다수 행복>을 원칙으로 삼는지 <최대행복>을 원칙으로 삼는 지 애매하므로 다수결 원칙과 구분하기 위해 공리주의는 최대행복을 원칙으로 삼는 것으로 하였다. 이런 구분은 일반화된 것 같다. 그러므로 문제의 [가]와 [나]는 분명히 구별 될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행복추구는 문제에서 이득추구로 풀이하고 주어진 문제에서 거리는 손해의 계산치로 하나 마이너스 이득으로 간주하기로 하다. 여기서 마이너스를 없이하고자 자기 마을에 학교가 서는 것을 30 단위의 이득으로 하였다.


A마을에 학교가 서는 경우 200명 * 30 =  6000

B마을 학생               100명 * -30 = -3000

따라서    6000 - 3000 = 3000


C 지점에 서는 경우 200명 * 15 + 100명 * 15 = 3000 + 1500 = 4500


그러므로   3000 < 4500 이므로 최대 이득(행복)은 A 마을보다 중간지점에 학교를 세우는 것이 공리주의 원칙인데 반해 다수결 원칙에 따르면 A마을에 학교 건립하는 것으로 풀이하였다.

II. 비판의 수준

<비판 2>

그런데 어느 수강생이 강의 후 이런 질문을 하였다. B마을 사람들에게 -30을 배정할 것이 아니라 0의 수치를 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이 말을 듣자 나는 “아이코 !” 내가 잘 못했구나“하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여러 가지 수치를 배정해보아도 결국 A 마을에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최대 행복>의 원칙에 부합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분명히 그 수강자의 말이 맞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정답으로 제시된 고통량의 함수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f(x) = 200 * x + 100(3 - x) = 100x + 300

여기서 가장 최저 값을 구하려면 x=0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함수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된 것이다.  “A 마을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를 x 라 하면, B 마을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3 - x 가 된다. 모든 쾌락은 질적으로 동일하므로 결국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각각의 학생이 느끼는 쾌락은 커지게 된다. 여기서 쾌락이 커진다는 것은 고통이 감소한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므로 300명의 거리에 따른 고통의 양을 함수로 표현하면 f(x) = 200 * x + 100(3 - x) = 100x + 300의 꼴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함수는 1차함수이며 x 는 0과 3사이 이고, 이 함수는 고통의 함수이므로 가장 작을 때가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A마을로부터의 거리가  0km 일 때 전체의 고통이 가장 작은, 즉, 쾌락이 가장 큰 상태가 되므로 A 마을에 학교를 건설하는 것이 타당하다.”

  < 비판 3>

그러면 어떻게 되는 가 ?  이 문제는 매우 좋은 문제라는 내 추리가 빗나갔음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닌 가? 이 말을 달리 풀이하면 이 문제는 공리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서 사용되는 다수결의 원칙을 잘 못 소개할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 상식이나 직관에 의하면 거리를 손해로 가정하는 등의 가정을 모두 함께한다고 할 때, A마을이나 B마을보다는 그 사이의 어떤 지점에 세워야할 것 같은데 A마을에 세워야 하는 것이 공리주의요 자유민주주의라면 이들이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은 너무나 명명백백하다.

 

<비판 3의 논리적 구조>      p (좋은 출제)라면 - q (그것이 정답이 아니다)

                              q (비판2: 그것이 정답이다)

                           ---------------------------

                            그러므로 -p (좋은 출제가 아니다)


   현재와 같은 출제가 정답을 고정화하여 채점을 쉽게 하는데  도움은 주겠으나 무엇을 위한 시험이며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새로 야기 시키고 있다. 이 문제는 공리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잘 못된 나쁜 사상이라는 오판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

    A 마을에 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 자유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를 오해하도록 유도하기 쉽다. 물론 이점에 관해서 이미 출제자도 의식하여 [나]에서 ’충분한 토의과정을 거쳐 몇 가지 의안을 성립시킨 다음‘이라는 단서를 첨부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위험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자유 민주주의는 다수의 횡포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좀 더 악의적인 혹평에 따르면 자유 민주주의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마치 참다운 자유 민주주의인 것처럼 공격하는 이른바 ‘허수아비논법’의 오류라고 말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의 원칙을 사용하는 것은 인권을 비롯한 모든 합리적인 방법을 다 사용하여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무엇이 옳은지 전혀 분간이 안 되는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이해관계가 문제에서처럼 분명히 구별될 경우 표 대결을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전제로 하는 합리적인 인간상에도 위배되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바르게 이해하는 문제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다.

   허수아비 논법의 오류라는 비판은 공리주의의 경우 더욱 분명해 진다.

   우선 A 마을에 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 공리주의의 원칙이라면 시험문제 [가]에서 지적하듯이 공리주의가 과연 그런 방식으로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조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답에서 볼 수 있는 고통량의 함수 f(x) = 200 * x + 100(3 - x) = 100x + 300으로 표현된 것은 명쾌하며 수학시험으로만 본다면 의미 있다. 그러나 수학은 현실적 실재가 아니라 추상화된 것이다. 즉, 정답에서는 “모든 쾌락은 질적으로 동일하므로 결국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각각의 학생이 느끼는 쾌락은 커지게 된다.”를 전제로 그런 함수가 성립되는데 과연 공리주의가 전제로 하는 최대다수의 행복이 그런 것인지 의문이다. 최대다수의 행복에서 ‘행복’을 쾌락으로 풀이하는 것은 비슷하나 그 쾌락을 ‘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공리주의도 많이 있고 모두 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는 경우도 벤잠 에서처럼 쾌락을 계산하는 기준이 있다. 따라서 최대 행복을 쾌락으로 번역하는 경우에도 그 쾌락의 의미를 좀 더 분명히 해야 한다. 쾌락의 직접성뿐 아니라 지속성과 같은 것도 쾌락평가의 기준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령,  당장에 이익이 되지 않거나 손해가 나더라도 멀리 보면 크게 이익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장사는 공리주의 원칙으로 권장된다. 더욱이 공리주의가 기반으로 하는 유용성(utility)은 행위평가의 기준 (행위 공리주의 , act utilitarianism 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은 규칙의 평가 기준으로 보는 규칙 공리주의 (rule-utilitarianism)가 매력적이다. 물론, 공리주의가 결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점에서 도덕원리로서 적합하냐의 문제 등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행복을 얻으려는 강한 충동을 똑같이 갖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행복 추구의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리주의사상은 근대 입법에 크게 기여한 점을 잊을 수 없다.      따라서 허수아비 논법에 빠지지 않으려면 공리주의를 공평하게 평가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해야 할 것이다. 흔히 논의되듯이 공리주의는 파이를 키우는데 치중하는 사상이다. 다시 말하면 분배보다 경제 성장에 치중한다. 우선 회사나 국가가 돈을 많이 벌어 놓고 나서 그 분배문제를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성장하는 동안도 최저 생활은 할 수 있다는 단서가  따른다.

   가령 어떤 회사 가 A라는 정책을 수행하면 그 사회 구성원 7명 모두에게 100만원씩 지급될 수 있다. 그러나 B라는 정책을 수행하면 그 사회 구성원 5명에게는 90만원씩 지급되고 나머지 1명에게는 500만원, 다른 1명에게는 1000만원이 돌아간다고 하자. (단 최저 생활비는 70만원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면 최대다수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모두가 10만원씩 더 받는  A정책을 채택할 것이고 최대행복을 추구한다면 700만원 벌리는 것보다 1950만원이 벌릴 B정책을 추구할 것이다. 이런 정책결정에서 공리주의가 충고하는 것은 B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A정책은 7* 100만원 = 700만원인데 반해 B정책은 5*90만원 + 1* 500만원 +1*1000만원 =1950만원이므로 <최대행복>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업에서 기업주와 사원에 관계와 흡사하다. 기업에 투자하는 사람이 없으면 A 정책처럼 단순 노동에 의해 평상시같이 지속되지만 그것이 경쟁사회에 있어서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전망이라고 하자. 그러나 기업주가 투자액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한다면 어느 기간은 B정책과 같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될 경우 어느 정책을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 같은데서 공리주의 정책은 큰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예는  공리주의의 기본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추상적인 수식이므로 실제에서는 복잡한 경험적인 내용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공리주의는 어떤 행위나 규칙의 결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는 확률적인 추리가 토대가 되는 역동적인 사상이므로 출제문제에서처럼 쾌락을 ‘통학거리’라는 단일 요소에 의해 고정시킨 방식으로는 오해를 초래하기 쉽다.


III. 구성의 수준

  우리는 출제자를 포함하여 탐구공동체를 구성한다고 전제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출제할 것인가 ? [논제 1]과 [논제 2]는 그런 오해의 요소가 있다. 그러나 [논제 3]에도 그런 비판이 가능한가? 아니다. 물론 정의의 원칙이 되는 ‘무지의 베일’의 의미를 좀더 문제와 관련하여 이해하기 쉽게 할 필요는 일을 것 같다.

<구성 2> 

[논제 1]과 [논제 2]는 포기하거나 다른 문제로 대치하고 다음의 [보충설명]을 추가하여 [논제 3]을 살리도록 재구성해보자. 

가령 내가 A 마을 사람이 될지 B 마을 사람이 될지 모른다. 이에 관해 나는 무지의 베일 속에 감금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그 중 어느 한 마을에는 반드시 있게 된다는 가정이 첨부된다. 그리고 나도 통학거리를 손해로 보는 제시문의 인간이며 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손해를 피하려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상정한다. 이런 가정을 한다고 전제하게 될 때   내가 어느 마을 사람이 되어도 손해를 가장 덜 보는 지점에 학교를 설립하는 정책이 가장 공정하다. 이런 무지의 베일을 기반으로 하는 사고실험에서 도출된 정의의 원칙을 따른다고 할 때, 이 원칙에 따라 [다]에 <등식을 이용하여 설명하시오>를 첨부하여 출제하면 정의론의 이해와 그 적용 및 수학의 등식 ( 200 * x = 100 (3-x), = 300 - 100x , x = 1 )의 구성과 풀이 등을 모두 검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롤스의 정의론을 다음과 같이 논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이타적이길 요구하는 것보다 이기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타적이게 행동하도록 하는 롤즈의 정의론이 훨씬 더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이기적인 사람들이 스스로 무지의 베일을 쓰려고 할까?” 이미 살펴보았듯이 무지의 베일을 실제로 쓰려고 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무지의 베일은 우리의 행동 규범, 게임규칙을 도출하는 하나의 사고 실험의 방식이다. 물론 다른 정의의 원리를 설정할 수도 있고 그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으나 이 정의론은 이런 게임규칙을 설정해보자는 제의이며 합의 가능한 제안으로 보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대학입시의 출제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것은 마치 이기적인 사람들이 축구시합의 규칙들을 규칙으로서 받아드리는 것과 흡사하다.  그 규칙에 위반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할 수 없는 일을 규범으로 설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볼 수 있으나 축구시합에서 반측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곧 그 규칙의 불필요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칙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이를 철저히 가려내는 심판이 있어야 모두가 축구시합을 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구성 3>

  탐구공동체가 구성하는 것은 논제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진리 탐구를 하는 공동체는 그 과정에서  배려적 사고를 통해  인간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  특히 비판을 받은 사람은 비판을 한 사람에게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기 쉽다. 남이 싫어하는 말을 할 필요 없다고 하여 함구하기 일쑤다. 그러면 우리들의 생각은 발전할 수 없고 오류의 함정에 빠진다. 그러나 탐구공동체에서는 정당한 비판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탐구 공동체에서는 사람에 대한 배려 못지않게 진리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구성1>의 잘 못을 알려주신 선생님에게 감사한다. 이런 비판이 있었기에 나는 <구성2>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실수에서 크게 배운 적절한 사례다.

<구성4 >

  이번 연수의 주제가 배려적 사고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체험을 따라가며 체험하는 이른바 추체험의 이해를 생각해 본다. 대학입학시험 출제관계로 여러 날 감금 당 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 위와 같은 혹평을 들으면 허탈감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출제자로서는 고민해가며 열심히 문제를 만들었고 아주 멋지게 생각되었는데 이런 비판을 당하고 보면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된다. 그러나 대학입시 출제와 같은 경우는 그것을 일찍 발견하게 한 비판은 매우 고맙게 느껴진다. 물론 그 비판에 대한 재 비판을 여러 모로 해 볼 필요는 있듯이 <구성2>에 대한 비판의 문도 열려있다. 우리의 탐구공동체는 배려적 사고를 통해 출제의 재구성을 권유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비판과 구성을 반복하는 우리의 탐구는 끝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한히 계속되는 것도 아니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하여 이를 디폴트(초기화)로 삼아 현장에 응용해보고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탐구를 지속하려는 것이다.

<구성5 >

   끝으로 나는 소중한 여름방학 2주의 시간을 반납하고 연수에 골몰하는 선생님들로부터 우리나라 교육의 희망을 구성해본다. 마지막 시간에 이야기 했듯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무기가 오용될 것이 염려되어 무장해제한 군인들에게 국방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어리석고 위태롭다. 이처럼 권위가 오용된 사례가 있다고 하여 교육자들로부터 권위를 박탈하고 교육을 하라는 것은 더욱 어리석고 위태로운 일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자에게 있어서 권위는 군인에게 있어서 무기처럼 그 직무수행의 필수품이다. 박진환교수의 강의에서처럼 탐구공동체에 있어서 교사는 안내자나 조정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안내자의 권위가 없고 조정의 권위가 없다면 그런 역할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학생들의 싸움을 말리고 조정하는 교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학부모가 있어 증인과 증거를 남기기 위해 비디오를 촬영해야 하거나 그런 항의를 깨끗이 없이하기 위해 경찰에 호소하기만 한다면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을 것인가? 임동욱 교장선생님이 첫날 첫 번째 시간에 교사의 신뢰성을 다룬 것은 내가 교사의 권위를 강조한 면과 흡사한 것 같다. 학부모가 학생들 앞에서 교사를 비난하거나 비하는 말을 자주한다면 그 학생이 그 교사로부터 얼마나 좋을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 음미해볼 문제다. 그래서 교사의 권위회복, 신뢰성회복이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선행조건이다. 하지만 그것이 데모와 같은 힘의 표현으로만 달성될 것 같지 않다. 교사들이 학생들에 대한 배려를 으뜸으로 하고 어떻게 하면 좀더 좋은 수업을 할 수 있을지 고심을 계속한다면 비록 작은 실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학생들부터 그리고 학부모와 사회로부터 권위를 회복하여 신뢰받는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IV 활용의 수준

  그리하여 우리들은 교사들이므로 문제풀이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출제된 문제 자체에 대해 교육 효과를 재평가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기존의 문제 중 [논제1]과 [논제2]를 포기하고 [논제 3]을 수정 선택하여 중학교 과정에 활용해 보도록 한다.


참고자료 : 쾌락 계산법


    우리는 자본주의적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본주의의 결점에만 치중해 비판하기는 즐기나 정작 이 세계의 추진력이 되고 있는 그 기본철학인 공리주의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공리주의가 인간의 내면적인 선의지(양심)와 같은 것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등의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나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하나 이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평등사상은  공리주의와 관련하여 별로 강조되어 온 것 같지 않다. 더욱이 공리주의가 결과주의를 표방 한다 고해서 이미 결정된 과거의 행위평가에 치중하는 것으로만 오해되고 현재 우리의 행위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결단하여 행동하는 공리주의의 과학적 합리성을 잊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공리주의의 원조로 호칭되는 벤잠 (Jeremy Bentham 1748-1832)의 쾌락(행복) 계산 기준(The Hedonistic Calculus), 일곱을 소개한다.

1. 강도; 관련 쾌락이 얼마나 강렬하나?

2. 지속성; 쾌락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으로 기대되나?

3. 확실성; 기대되는 쾌락이 산출되리라는 경험, 어떤 것에 얼마나 의존하는가? (확률값)

4. 근접성; 예견된 쾌락이 얼마나 직접 또는 오래 있다 성취될 것인가?

5. 다산성; 미래에 얼마만큼 많은 쾌락을 초래하며 쾌락에 수반될 고통은 얼마인가?

6. 순수성; 쾌락이 고통의 요소들로부터 얼마나 해방되나?

7. 범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그 쾌락을 공유 하나?


  이 기준은 최대 행복을 쾌락으로 간주하며 그것도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보지 않고 오직 양적인 차이만을 인정하는 초기의 세련되지 못한 공리주의다. 하지만 이런 기준으로 볼 때에도 100명의 쾌락을 무시하고 200명의 쾌락만이 고려되는  행위,  A 마을에 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 공리주의의 원칙에 부합된다고 볼 수 없다. 지속성, 확실성, 근접성, 다산성, 범위 등 모두가 행위의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지향적 기준들이기 때문이다.


알 림:

1. 임동욱 교장선생님에게

‘좋은 문제’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하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수정합니다.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문제’를 제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나의 수치적용의 잘 못을 지적해 주신

    연희중학교 이경연 선생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회신메일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좋은 말씀을 주셔서  우리들의 탐구공동체를 더욱 발전시켜 갑시다.

 

3.  논의한 시험문제는 홈에서 ‘아카데미’ => ‘이모저모’에  다른 사진들과 더불어 올려 있습니다.

 

4. 다음선생님들은 이메일주소가 잘못되어 되 돌아 왔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들은 leecs@korea.ac.kr 로 연락수시기 바랍니다.

이주용, 김경혜, 이승인, 안상순, 한건숙, 한미애, 박순혜, 김기갑, 이현경




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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