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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好學臺의 뿌리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13/04/25 01:01:30
조 회  
821


好學臺의 뿌리

 

- <논어>에 나타난 好學을 중심으로 -

 

이 초식

 

일시: 2013년 4월 27일 토 11-13시 담소회

장소: 도대 철학교육 수련원 발표예정

 

 

◇ 호학대는 2011년 세계 어린이 철학교육연구의 태두가 되는 ICPIC 모임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을 기념하여 경기도 가평군 북면 도대리 <철학교육 수련원> 구내에 건립되다.

 

◇ 호학대의 뿌리는 휴머니즘적인 인간교육을 통해 인간혁명을 이룩하고자 민주 시민의식과 학도의 본분을 사명으로 하는 서울교육대학 철학회가 1970년대 탄생할 때 이미 심어졌다고 할 수 있다.

 

◇ 호학대의 뿌리는 서울교육대학 철학연구동문회로 이어져 교내 동아리 모임인 철학회와 더불어 지난 40여 년 간 뻗어 나오며 많은 가지를 형성해 왔다. 그 결과 탄생하게 된 또 다른 뿌리가 <한국철학교육 아카데미>다. 이를 통해 그 뿌리는 한국의 영역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아가 호학대는 <2012년도 세계 교육계 인물>의 요람 역할을 하게 된다.

 

◇ 이제 <세계교육계 인물>이라는 시상은 그 동안 한국 역사에서 문화적으로 많은 빚을 져온 것을 갚아야 한다는 세계인의 음성으로 풀이된다. 철학교육은 주로 서양 철학교육을 의미하며 동양에는 철학은 없고 사상만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서로 교섭 없이 독자적으로 형성된 이질적인 문화들을 단순히 비교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서로의 이질적인 문화의 소통을 통해 함께 살아 가야하는 것이 오늘날의 세계다. 그리하여 단순 비교의 위험을 무릅쓰고 문화소통의 철학을 위해 ‘好學’의 개념을 설정해 보았다. 이를 통해 오랫동안 신세져온 중국문화의 빚과 서양문화의 빚을 갚아보려는 꿈을 품어 본다.

 

◇ 호학의 개념은 <논어>에서 빌려온 것이다. <논어>는 지난 500여 년간 우리나라 철학교육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으며 동양사상의 기반을 이룬 저서중의 하나로 꼽힌다. 필자는 중국철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므로 번역과 주석에 의존하여 본문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논어>라는 책 하나에만 한정하여 논한다. 그리고 ‘필자가 이해하는 한에 있어서’라는 단서가 붙은 것으로 읽고 필자의 풀이가 잘 못된 것은 전공자들의 수정을 부탁한다. 아마도 전공이 다른 분야와의 의사소통, 한 문화와 다른 문화의 가교를 시도하려면 이러한 방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 '철학'의 어원이 그리스의 Philosophia에서 유래되는 愛智學의 뜻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와 대비되는 동양문화에서의 호칭을 <논어>에서 찾아본다면 ‘好學’일 것 같다. 孔子님을 儒敎라는 종교의 敎主로 보지 않고 儒學이라는 철학의 큰 어른으로 보아 서양철학에서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라고 전제한다. 이런 시각에서, <논어>에서 공자는 자신의 사상적 특색을 호학으로 지칭하는 측면에 필자는 주목한다.(5-27 (第五 二十七의 약칭);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뿐만 아니라 제자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제자상을 안연을 통해 여러 가지로 논하는 가운데서도 호학을 언급한다. (6-2; 哀公問弟子熟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 그런데 好學을 好知와 동일시해서는 안 될 것 같다. philosohia는 글자 그대로 보면 好知로 풀이 될 수 있으며 호지와 호학을 동일시하여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즉, 지지자는 호지자만 못하고 호지자는 락지자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6-18;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樂學臺’가 더 좋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 하지만 好學은 고전에서 이미 개념화된 것이나 樂學은 그렇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논어> 에서 好學과 好知는 분명히 구분한다. 호학없는 호지의 폐단은 탕이라고 한다.(17-8; 好知不好學 其蔽也 蕩). 여기서 탕(蕩)은 허황(虛荒 )또는 방탕(放蕩)으로 풀이되는 것을 보면 호학은 호지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위에서는 호학을 중요성을 호지와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호인(好仁), 호신(好信), 호직(好直), 호용(好勇), 호강(好岡)과의 관계에서도 호학(好學)이 없어서는 안 됨을 역설한다. 즉, 호학없는 호인의 폐단은 우(愚; 맹목적이고 어리석다)하고, 호학없는 호신의 폐단은 적(賊; 남을 해롭게 한다)하며, 호학없는 호직의 폐단은 교(絞; 각박하다)하며, 호학없는 호용의 폐단은 란(亂; 난폭 亂暴하다)하며 호학없는 호강의 폐단은 광 (狂; 망발, 광적이다)하다고 한다.

 

◇ 이와 같은 단편적인 사례만을 보아도 우리가 사용해온 철학의 의미는 <논어>에 나타난 호학의 의미로 풀이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가 호칭한 호학대는 동서철학의 소통과 유사성을 상징하는 교육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말 서울교육대학 철학연구동문회의 원로회원들이 필자에게 준 상패는 필자 개인에게 보다도 우리 모두가 세계교육계에 우리들이 빚진 문화적인 빚을 갚아야 하겠다는 다짐으로 풀이하고 싶다.

 

◇ 참고문헌: 張基槿 譯著 東洋古典 論語, 明文堂, 1975

 

 



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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