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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서학역리정리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11/03/01 17:05:26
조 회  
2021


서학 역리 (棲鶴 逆理)

 

 

이 초식 (고려대 명예교수)

1. 문제의 재발견

 

한국에 있어서 사고력 교육의 전통을 알아보려는 것이 이 문제를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나 민속 교육 그리고 불교교육이나 도교교육 등도 우리의 전통 문화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으나 필자는 유학교육을 선택하여 검토하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유학(儒學)교육은 지난 600여 년간 국가적인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개발 보급되었으며 공교육이나 사교육을 막론하고 실질적으로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유학교육의 필독서 중에서 <논어(論語)>를 우선 탐구대상으로 삼았다. 그 첫 장의 다음 구절에서 이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필자는 이에 관해 <성숙의 불씨>라는 곳에 철학하기와 무본(務本) (- 2009827일자)”내가 미쳤나 세상이 미쳤나 (-2009910일자) ”를 이미 기고한 바 있으며 이를 한국철학교육 아카데미의 공식 웹사이트 (http://www.katpis.org)에 전재하여 201012월 말 현재 각기 1100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그동안 직접적인 반응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필자 자신이 이에 몰두할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방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01220일 이를 다시 검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가깝게 지내던 철학계의 선배, 한전숙님이 타계하여 문상 때 서강대학교 정인재교수를 만나 타계하신분이 몰두하시던 현상학회의 이야기를 나눈 것이 그 계기이다. 전철을 타고 잠시 나눈 대화라 상세한 검토는 하지 못했으나 동양철학을 전공하신 정교수가 사계의 문외한인 필자의 위의 견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말씀에 고무되어 이 문제를 다시 발견한 것이다.

철학한다는 것 (philosophieren)는 것은 결국 務本으로 보인다며 현상학은 아마도 그것을 직관을 통해 우리의 내면에서 추구한 것으로 필자는 생각했다. 이런 의미에서 <논어>의 윗 대목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정교수는 이 대목을 암송하며 설명했다. 가 연결되는 대목을 필자는 공감하나 그 다음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의 번역들에서 효제를 인의 본으로 풀이하는 것은 잘 못인 것 같다고 했더니 잘 본 것이라고 정교수는 고무적인 평가를 해주었다. 이에 용기를 얻어 필자는 다시 최근 번역서들을 들쳐보고 이 부분의 주석도 알아보게 되었다. 물론 주석도 모두 번역된 것이다.

 

2. 문제의 재음미

필자가 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단순한 번역문제나 자구풀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전문가도 논리적 사고력 교육을 받으면 전문가들의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논리 교육은 특정 상황에서의 실질적인 사고과정보다도 그 사고내용들 속에 감추어 있는 사고구조를 음미하도록 관심의 방향을 전환하는 성과를 기대하므로 논리교육은 때때로 전문영역의 전문가들이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을 보게 할 수도 있다. 필자는 이 사례를 그러한 효과중의 하나로 꼽고 싶다. 특히 이 부분은 유학철학의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간의 관계이므로 간략한 표현이지만 매우 중요하게 간주된다. 따라서 이 분야의 비전문가인 필자가 논리적 사고력을 통해 해당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지만 문제 제기만이라도 정당하게 할 수 있다면 큰 수학으로 간주된다.

 

학문이 세분화된 오늘날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 지라도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한 분야의 전문가는 다른 분야에서는 문외한이며 비전문가임에 틀림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은 언어에 능통한 사람일 지라도 모든 언어의 전문가일 수는 없다. 그리하여 문제의 한문뿐 만아니라 희랍어, 라틴어, 영어, 독어, 불어 등 그 많은 언어를 모두 습득하여 논하기는 어려우므로 결국 모국어로 번역한 것을 통할 수밖에 없다. 또한 민주시민의 주권행사는 대부분 비전문가들이 전문영역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게 마련이다. 민주시민의 논리적 사고력 교육은 그와 같은 의사결정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문제, 생명윤리문제, 경제 성장문제, 국가 안보외교문제, 과학기술의 발전문제, 교육 문화문제 등 자신의 비전문 분야에서 나아갈 방향의 결정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것이 민주시민이다. 그 결정이 잘 못되면 큰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물론, 논리적 사고력 교육이 만병통치 식의 해결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하지만 잘 못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논리 교육은 필요 불가결할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제기된 문제에 접근해 보자.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에 관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지낼 수 있으나 필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으며 그 문제 상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테제1. “효제는 의 근본이다는 번역이 옳다면 원문이 잘 못되었다.

테제2. 원문이 옳다면 효제는 의 근본이다의 번역이 잘 못되었다.

테제3. 원문이 옳다면 효도하고 우애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을 실천하는 것을 근본으로 할 것이다는 내용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런데 테제1처럼 번역이 옳고 원문이 잘 못되었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필자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테제2에서처럼 원문은 옳다고 전제하고 번역을 문제 삼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다. 이 부분을 그대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는 이미 오래전에 <논어>의 전통 주석가에 의해 밝혀진바 있다. 그런 사실은 필자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그것(효제)이 바로 의 근본이라고 한다면 옳지 않다.(孝弟是仁之一事, 謂之行仁之本則可, 謂是仁之本則不可) 이를 통해 필자의 문제제기가 결코 빗나간 것이 아니며 정당한 것이라는 점을 간접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이 정통 주석에 의거하면 이 부분을 어물어물 넘어가서는 안 되고 가()와 불가(不可)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석은 한문의 다의성을 구실로 아무렇게나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통념을 강력히 논박한다. 우리가 정통주석에 따른다면 다음 제1종의 번역은 잘 못되게 마련이다. (* 여기서는 출판연도만을 제시한다.)

 

 

1종의 번역 내용

1-1. “효제는 의 근본이다”(1994)

1-2. “효도와 형이나 연장자를 잘 섬기는 것은 아마 의 근본일 것이다.” (2005)

1-3. "The Gentleman should exert himself to the basics. For, if they are established, the Way will grow. What is filial and fraternal become, perhaps, the basis of Goodness" (2003)

 

이미 오래전부터 제1종의 번역은 잘 못된 것으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번역이 오늘날도 계속되는 것을 보면 텍스트에 그렇게 오해될 수 있는 측면이 없지 않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겠다. 오늘날 정통 주석을 따르는 번역은 다음과 같다.

 

2종의 번역 내용

2-1 “孝悌을 행하는 근본이다.”

2-2 “효도와 공경이가 그어짐을 하는 근본이 될 진저” (1977)

2-3 “효성과 공순함이란 것은 을 이룩하는 근본인 것이다.” (1985)

2-4 “효도와 공손이 인을 실천하는 근본일 것이다.” (2000)

2-5. “효성과 우애란 것은 인을 실천하는 기본일 게다. (2005)

2-6. “효와 제라는 인을 실천하는 데 근본 것이다. (2007)

 

정통 주석에 따르면 효제는 의 근본은 아니지만 을 행하는 근본이다는 것이다. 특히 그 풀이에는 本性의 개념구분이 도입된다. , 이란 本性 그 자체이고 孝悌는 그것의 한 이다. 따라서 본성 속에는 효제가 들어 있지 않다. 본성의 측면에서 볼 때 孝悌根本이라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그러나 의 측면에서 효제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라고 한다. 本性의 개념을 통한 이러한 풀이는 설득력 있게 느껴 필자는 일단 옳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그렇게 전제할 때 필자는 다음의 몇 가지 어려운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첫째, 텍스트의 바로 앞의 本立而道生 과의 연결 관계가 문제다. 특히 에 관한 언급이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있어야 할 것 같은 데 없기 때문이다.

 

둘째, 정통 주석에 따른다면 本性가 있고 가 있다고 보아야 하는지도 문제다. 그러면 孝悌本性은 아니지만 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텍스트 자체가 오해를 초래하기 쉽게 된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이라고 하면 으레 본성의 본을 연상하기 쉽기 때문이다.

 

셋째, 필자는 만약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를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면 本性의 개념 없이도 앞에 本立而道生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 , 테제 3:

효도하고 우애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을 실천하는 것을 근본으로 할 것이다

 

효제와 인은 추상적인 덕목이지만 사람의 행동과 연결될 때에 구체화된다. 따라서 효제하는 인간 모두가 반드시 인의 실천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테제 3과 같은 번역을 보지 못했으며 그것이 가능한지를 판단할 능력도 없다. (이에 대해 정교수는 그 번역이 가능함을 뒤에 밝히고 있다. )

 

3. 서학역리의 규정

 

이제 필자가 직면한 난제를 정리해 보기로 한다. 간략하게 표현하면 오늘날 지배적인 번역은 孝悌의 실천의 근본이다.”이고 필자의 번역은 孝悌의 실천을 근본으로 한다.”인데 양자의 차이가 없다면 문제될 것 없겠으나 그 차이는 크기 때문에 逆理에 직면한다. 왜냐하면 ‘AB의 근본이다

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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